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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일본이 신용등급이 강등되었다. 일본의 경제 수준은 한국보다 훨씬 악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랜시간동안 부자나라로 인식되었던 일본의 경제 하락은 한국 경제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어렸을 때 일제라고 하면 무조건 좋은 제품이었다. 지금도 약간 그런 인식이 있지만, 일본어가 써 있는 제품은 무조건 좋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점차 줄어들고 일본에 대한 국가적 이미지도 상당히 떨어진 느낌을 받는다.
일본의 경제적 침몰의 원인이 어디있나?
나는 대표적으로 전자제품의 강국이었던 일본이 그 타이틀을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본다. 특히 일본 전자제품 브랜드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소니는 악제의 악제를 거듭반복되었다. 한국에서 소니는 부의 상징이었으며, 특정 마니아들 사이에 매우 고가이며 질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니의 제품 중 이렇다고 할만한 제품들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1. 기대가 컸던 MD
내가 고등학교 시절 (96년도 쯤) 학새들 중에 소니 워크맨을 가지고 있으면 정말 부자였다. 대개는 마이마이나 와와를 가지고 들었지만, 일부 부유한 학생들은 소니 워크맨을 가지고 다녔다. 그러던 중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는데 당시 일본의 소니는 몇년 안에 CD와 Tape를 읽을 수 있는 플레이어를 출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것을 대체할 것으로 MD(mini disk)를 발표했다. 그리고 당시 부유한 학생들 중 정말 극소수는 MD 플레이어를 구입해서 가지고 다녔는데, 자유롭게 쓰고 지울 수 있으며 음성녹음이 스튜디오 수준으로 매우 깨끗한 수준이어서 학생들의 부러움을 샀었다. 당시 소니는 CD와 Tape의 플레이어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발표를 할 정도로 MD에 거는 기대가 컸다. 그리고 세계 음악 시작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오디오나 차량용 오디오에도 md를 지원하는 모델이 출시되었다. 그러나.... 그 발표를 한 뒤 곧 이어 나온 것이 바로 MP3 음원이었다. 그리고 초고속 인터넷.... 이 둘의 결합은 인터넷으로 불법 mp3 파일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으며 그 결과로 MP3 플레이어들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엄청나게 쏟아졌다. 당시 아이리버는 mp3 플레이어의 중심에 있었다. 소니에게는 매우 불운한 일이었다. MD는 당시 마니아 층에게만 어필을 하였을 뿐 대중적인 지지를 얻지 못한체 뭍히고 말았다.
2. 디스플레이
소니 브라비아 TV 역시 부의 상징이었다. 몇년 전만해도 삼성과 LG의 LCD TV가 많이 약진을 하고 잇었지만, 소니의 브라비아 TV는 매우 고가의 브랜드였다. 그리고 당시 굉장히 부잣집에서만 볼 수 있었다. 브라운관 TV가 대체로 많았던 시절에 거의 초창기 LCD와 PDP TV 시장에서 매우 혁신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삼성과 LG가 강세하고 3D TV 등 기발한 기술로 세계시장을 앞도하였으며 화질면에는 소니 TV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앞서 갔다.
3. 휴대용 PC
소니의 UMPC와 바이오 P시리즈는 소니가 휴대성이 강한 노트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휴대성 강한 PC 기능을 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처음 나온 것이 UMPC이다. 언뜻 보기에는 괴상한 디자인이었지만, 사실 노트북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며 UMPC의 새로운 분야를 개발해 낸 것이 바로 소니이다. 그러나 크기와 디자인만 작을 뿐 성능이 좋지 못한 성능과 무게로 인해 실패한 녀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소니 노트북의 자존심인 바이오에서 청바지지 뒷주머니에 들어갈만한 지갑 싸이즈의 노트북을 만들었다. UMPC와 다르게 노트북 모양을 하고 있지만, SSD와 높은 해상도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필자 역시 1년 넘게 사용했었다. 이러한 두 제품은 모두 소니가 휴대성 강한 혁신적인 제품으로 세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뒤 바로 나온 것이 애플의 아이패드이다. 즉 타블렛PC는 소니가 휴대성 강한 노트북의 시장에 초석을 놓았지만, 결국 그 이익은 애플이 가져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타블렛PC는 소니의 방향을 그대로 이어 받았지만, 그 이익은 다른 브랜드에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4. 스마트 폰
소니의 에릭슨은 스마트폰 시장에 매우 낮은 인지도가 있다. 그러나 그동안 소니가 핸드폰 분야에 외인이 아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소니는 핸드폰 시장에 여러가지 도전적인 모델을 제시했으며 일부는 매우 유용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소리 에릭슨은 전용 손목시계와 핸드폰이 블루투스로 통신이 되어 핸드폰을 꺼내지 않아도 문자와 전화가 오면 손목시계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더욱 스마트폰 시장이 활발한 시기가 왔을 때에도 주목할만한 제품을 내놓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노력은 했으나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했다.
5. 소니 카메라
카메라의 정석은 소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카메라 브랜드의 대표주자는 소니였다. 특별히 디지털 카메라가 막 활발해 질 시기였을 2000년도 초반에 소니는 디지털 카메라의 선두주자였다. 그 중에서 707, 717 모델은 전문가 카메라와 비슷한 렌즈 구경에 렌즈 교환형식이 아니었지만, 높은 픽셀과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DSLR이 나오기 전까지 최고급 카메라였다. 그러나 후속 모델은 828을 출시할 쯤 캐논에서는 저가형 DSLR 300D를 출시하였고 완전히 디지털 카메라 시장을 뒤 흔들어 놓았다. 물론 캐논사도 일본이 본사이다. 그러나 소니에게 타격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당시 DSLR 카메라가 한창 인기였을 당시 소니는 대중성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828을 출시하였고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더욱 828의 색수차 현상은 디지털 카메라의 종결자였을 것만 같았던 소니 카메라의 몰락을 일으켰다. 물론 여전히 똑닥이라고 불리는 카메라에서 소니의 인지도가 있지만, 여전히 DSLR에서는 캐논과 니콘이 앞도적이다. 소니가 자존심을 지키다가 뒤늦게 DSLR 시장에 뛰어 들었지만, 여전히 캐논과 니콘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6. 소니 핸디캠
소니 핸디캠은 가정용 캠코더의 표준이었다. 그동안 테입방식에서 디지털 방식까지 그리고 full HD 지원에서 하드 방식의 캠코더, 블루레이까지 많은 발전이 있었다. 영상을 담을 수 있다는 특수성이 있는 캠코더 시장에서 소니는 거의 독점하듯이 하였다. 그러나 2000년 후반부터 다양한 디지털 기기들의 등장은 캠코더 없이도 영상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카메라에서 이제는 DSLR에서도 full HD 동영상을 담을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에서도 캠코더 못지 않는 영상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소니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이제 더이상 덩치 큰 캠코더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영상을 담을 수 있는 시기다 되었다.
소니는 일본의 자존심이다. 그 자존심이 무너지고 있다. 일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소니가 몰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소니는 여러가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노력하였지만, 주목할만한 이슈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이미지와 경제부흥을 위하여 이러한 민감한 상황을 인지하고 세계에 이목을 끌지 못하면 이러한 상황을 더욱 더 악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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